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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본문
영화 Her에서 보면 OS는 동시에 몇 백 명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또 몇 십명의 사람과 '사랑하는 관계' 에 있다고 말한다.
그걸 들은 주인공은 배신감에 얻어맞고 비틀비틀거린다.
영화를 보면서는 나도 함께 머리를 얻어맞은 듯, 마음이 쿵 ㅡ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녀가 다른 많은 사람과 '사랑하는' 관계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왜 내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가에 대헤서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육체가 없다.
그러니까 물리적인 배신은 불가능.
그녀는 OS이기 때문에 다른 몇 백명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와의 대화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관심의 분산이라는 것은 없다.
그녀는 내가 필요로 할 때면 늘 내 곁에 있어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나와 비슷한 또다른 오백명쯤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더라도.
왜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나의 소유' 로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
나 외의 누군가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 상대적으로 내게 오는 관심을 줄이는 제로섬 게임에 익숙하기 때문인걸까.
만일 정말 OS가 나의 연인이라면,
그래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고
내가 필요할 때 늘 내 곁에 있어주고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나를 무슨 일이 있어도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은 분명 이상적이고 모두가 연인에게 바라는 것일텐데도 무언가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는 상대에게 특별한 상대가 됨으로써 우리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확인받는 것일까?
혼자서는 어느 순간에든 우주의 먼지처럼 흩어져버릴 것만 같은 나라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상대에게 유일무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추를 달아 흩어지지 않게 붙드는 걸까?
내가 당신에게 의미있는 존재임이 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오히려 내가 의미있어진다.
어떤 행함으로써의 필요성이 아닌 존재함으로써의 필요성이,
너무 갈급한가보다.
TistoryM에서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