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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노아. 2014. 6. 25. 17:03


출처: <먹는존재> http://www.lezhin.com/comic/ee/21

(그런데 주소를 옮겨오면서 깨달은건데 ee 란 eating existance 를 말하는 걸까? 귀엽잖아..?)


'태어나지 않을 자유'

한창 '잊혀질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요즘. 뭔가 라임으로 빚으면 좋을 것 같은 저 문장이라니. 

저렇게 세련된 표현으로 나온적은 없지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 때가 있었고 요즘도 가아끔. 삶을 산다는 거 자체가 워낙 피곤한데, 그게 엄마의 탓도 아빠의 탓도 이 세상의 탓도 아닌 걸 깨닫고 나면 남는 건 나뿐이잖아. 그렇다고 이게 내 탓도 아니니까 애매하게 유전자+환경의 오묘한 조합 탓이라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론에 따르면, 내가 낳게 될 내 아이도 내 것같은 유전자를 물려받게 된다는 소리인데, 내가 어마무시하게 사랑하게 될 그 존재가 아무 잘못도 없이 단지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고통을 겪어야한다니 너무나도 미안하고 절망스러워서, 낳고 싶다는 생각이 싹 가시는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어떤 유전자가 발현될지야 확률게임스럽게도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서도.

예민하게 태어난다는 것은 결국 팔하나나 다리 하나쯤 없이 태어나는 보이지 않는 장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장애라는 것은 축복도 저주도 아닌 그저 남들과는 다른, 좀 불편한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른팔이 없는 사람에게 "너는 왜 오른손으로 밥을 먹지 않니?" 라고 묻는 말이 그에게 황당하게 들리는 만큼이나 예민한 사람에게 "왜 생각을 좀 더 편안하게 가지지 않는 거니?" 라고 묻는 말은 어쩌면 황당한 일일지도. 그렇지만 사람들이란 신기해서 어떤 정신적, 혹은 정서적 고통에 대해서는 아주아주 쉽게 정신력이 부족해서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판단해 버린다. '나도 그 비슷한 경험해봤는데 ~' 로 시작되는 설교는, 어쩌면 오른손가락을 종이에 베여본 사람이 오른팔 없이 태어난 사람 앞에서 자기 나름의 감동의 회복스토리를 설파하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실 '내가 보는 검정색'과 '니가 보는 검정색'이 정말 같은 색깔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이 모든 세상이 절대적으로 같은 지 아닌지 누구도 모른다는 이야기. 나는 검정색으로 보고 있는 것을 누군가는 흰색으로 보고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또 하늘색으로 보고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것을 '검정색'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에, 다같이 같은 것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다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오만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네가 아니고, 네가 내가 아니고, 그리고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뭘 경험하고 뭘 느끼는 지도 모르겠는데, '이해' 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타인과 소통하고 나에 대해서 이해받지 않고는 못견디는 몹쓸 지병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나도 이렇게 궁시렁궁시렁 타이핑을 치고 있는 거겠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그런 사랑에 대한 필요를 넣어주신 것은, 그러지 않았으면 모두가 자기 욕심대로 뿔뿔히 흩어져 죽어버렸을 인간에 대한 그야말로 '신의 한수'라는 생각.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심리학 책을 본다. 나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고, 타인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데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건, 결국 상담이라는 건 어떤 지식을 나에게서 상대에게로 전달시키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 대해서 받아들여주고, 상대에 대해서 받아들여주는 것, 그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찌보면 기적같은 '경험'을 통해서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그러니까 그건 지식과 이성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몸' 수준의 변화다. 몸으로, 세포 하나하나가, 뉴런 하나하나가 그게 정말 그런지 '체험'해야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하루에도 너무 많은 자극을 받는다. 그래서 너무 많은 생각들이 진흙물을 휘저어 놓을 때마냥 춤추듯이 떠올랐다가 말없이 가라앉는다. 파블로브의 개도 아니고 자극, 생각, 자극, 생각이 반복되는데, 문제는 내가 그런 너무 많은 생각들이 올라오고 가라앉는 상태에 지나치게 익숙해있다는 것. 그 수없는 먼지 같은 생각들 속에 분명 'something' 도 있었을 텐데, 멍하니 생각의 물결 속에 머무르다 손에서 다 놓쳐버린다. 이래서 내가 기억력이 나쁜지도 모른다. 흙탕물에 시야가 뿌얗게 가리워서 어딘가 물맑은 곳에 가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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