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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 생활을 이제 그만 청산하려고 합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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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 생활을 이제 그만 청산하려고 합니다.

노아. 2018. 3. 11. 17:39

예전에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시작할 때쯤 학교에서 전체메일로 발송된 이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내용은 '방학 동안의 학생 돈 관리.'

많은 도움되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지만 역시나 기억이 나지 않고,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교육 동영상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학생과 교육하는 사람이 나왔는데, 대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하죠?"

"어... 역시 신용카드?"

"아니에요!"

"어.. 그럼 역시 대출?"

"아니에요!"

"그럼 어쩌죠?"

"돈이 없으면 돈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응? 

저는 그 동영상을 보고 벙쪄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월가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교씨, 당신들 이걸 교육 동영상이라고..?



마치 이 리빙포인트를 봤을 때 만큼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신용카드 생활과 빚내기가 너무 일상적인 미국의 단면을 보여주는 교육이고, 필요한 내용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카드라고는 체크카드 밖에 몰랐던 당시의 저로써는 '돈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죠.

실제로 저는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별로 쓰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렇게 빚내서 하는 생활에 익숙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신용카드를 남용하게 되었느냐, 월급이 통장에 스치우는 삶을 살고 있느냐 물으신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제가 끌어다 쓴 것은 '내일의 체력'이었습니다.


꼭 이뤄야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늘 저의 건강 앞에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밤을 새더라도, 정크 푸드를 먹으면서도 당장 내일 볼 시험에서 A를 맞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이야 빼면 되고 부족한 잠이야 그 다음날 좀 보충하면 되지만, 대학원에, 입사에 영향을 미칠 성적은 영원히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저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해내며 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체력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은 애초에 그렇게 하면서 '빚을 내고' 있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빚을 어느정도는 다들 내고 있지만, '갚을 수준 만큼의 빚'만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달랐습니다.

유학 생활, 미국에서의 대학원, 한국에서 석사, 바로 시작한 일 등은 모두 모르는 새 저에게 무리가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허덕허덕 하면서도 해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몰입하고 있을 때 살아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분명 1월의 비트코인 그래프처럼 건강이 폭락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있었으면서도,

분명 다음주면 반등할거야, 분명 다음달이면, 분명 일을 시작해서 정신적인 여유가 조금 생기면 좋아질 것이라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건강을 빚내어 끌어다 쓰며 여기까지 버텨온 셈입니다.


이제 제 몸은 파업을 선언했습니다.

더 이상 끌어다 쓸 담보도 없습니다.

남은 것은 몸에 쌓여있는 부채 뿐입니다.


돈이 없다면,

쓰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이 없다면,

일을 줄여야 합니다.


이런 단순한 진리를 다 잃고나서야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쉬려고 합니다.

마치 사치스런 생활을 지속했던 사람이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만큼,

(그것은 마치 자신의 가치가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일 것입니다)

저에게는 무리하며 몰입하며 사는 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라이프 스타일이 저의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를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 때문에 일을, 공부를 내려놓는 것이 힘이 듭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없는걸요. 

먹고 죽으려고 봐도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쉬어야죠.


그래서 쉬어보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쉬어보려고 합니다.

평생 백수가 되어서 살더라도, 돈 많고 학벌좋은 환자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제가 한 번 쉬어보겠습니다.

어찌될지는 두고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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