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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노아. 2014. 6. 19. 00:48
표제어: 노랑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 일색인 문화에서 노랑은 그저 유치원생들이나 입는 색이라고, 오만한 초등학교 이학년의 나는 코웃음을 쳤었던 것 같다. 티비를 봐도 노랑이들은 영 제 힘을 펴지 못했다. 파워레인져에서도 옐로는 성비를 맞추기 위해 여성스런 핑크의 뒤에서 존재감 없이 서있었고, 여학생들이 사랑했던 만화 웨딩피치에서도 분홍색 주인공 피치의 뒤에서 노랑색 데이지는 영 기를 펴지 못했다. 물론 러브라인 하나 없이. 재미로 하던 심리 테스트들에서도 노랑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아 다녔다. 노랑색은 웬지 조연의 색인 것만 같았고, 햇병아리의 색인 것 같았고, 그나마도 정상적인 게 아닌 무언가 광기어린 색채라는 것이 노랑에 대해 내가 가진 인상이었다.

미국의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 에 보면 개츠비는 노란 클래식카를 몬다. 평생 황금과 돈을 쫒았던 개츠비에게 딱 어울리는 노란색 차. 그리고 그런 그의 운명을 단단히 꼬아놓는 것도 이 노란색 차다. 그는 이 흔치않은 노란 클래식카 때문에 결국 죽임을 당하니까. 개츠비가 평생에 걸쳐 마치 종교처럼 사랑했던 데이지의 인생에, 개츠비는 결코 주연이 되지 못한다. 그저 지나가는 한 때의 미칠듯한 사랑으로만 기억될, 그러나 흔적 하나 없이 사라져버리는 개츠비의 노란 운명은 내가 보기엔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런 개츠비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추앙받는다. 물론 피츠제럴드의 수려한 문장 탓도 있겠지만 개츠비의 이야기는 뻔하지만 사람의 깊은 안쪽을 찌르는 힘이 있었다. 개츠비가 '위대한' 까닭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안으로는 썩어있었던 1920년대의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순수하다 못해 광기어리기까지 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생각한다. 그에게는 단 한가지 목표가 있었고 그는 그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 꿈을, 절대로 잊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 뜨거운 무언가를, 광기에 가까운 순수한 그것을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가슴에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언가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국사회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무채색에 가깝다.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마음이야 있지만, 결정적으로 튀고싶지는 않다. 어느나라 사람들보다 감성적인 사람들이지만 다들 검정바지와 흰셔츠를 집어든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야 이 '모난 돌이 정맞는' 사회에서 정 안맞고 살 수 있다. 남들 대학가니까 대학가야 하고, 남들 취직하니까 취직해야 한다. 남들 시집갈 때 나도 시집가야 할테고, 남들이 아이 가질 때 아마 나도 압박을 받을 것이다. 어떤 정해진 인생의 길이 있는 마냥, 그 길에서 벗어나면 단순히 별종이 아니라 덜떨어진 걸로 인식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다들 무채색을 입는다. 덜떨어진 햇병아리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다.

나도 흰셔츠를 꺼내들었다. 검정색 슬랙스를 추켜올린다. 검정 구두를 신는다. 그렇지만 나에겐 은밀하게 숨겨진 비밀이 있다. 바로 그 밋밋한 검정구두 안 노랑 발톱이다. 그냥 노랑이 아니다. 노오랗디 노란 형광 노랑색. 비록 다른 사람은 그게 있는지조차 몰라도, 내게는 여전히 노랑이 있다. 무채색 안에 숨겨진 나의 서툴지만 순수한, 광기어리지만 열정이 넘치는, 그 어리숙하면서도 빠져드는 노랑 말이다. 튀고싶어 안달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래도 나의 개성을 잃고싶지 않다. 비록 마지막까지 역사의 주연이 되지 못한 채 끝나더라도, 흔한 러브라인 타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이 나만의 독특성을 내 손에 끝까지 움켜쥐고 가보고싶다. 어찌보면 정말 작은 차이지만, 나는 그 작은 차이에 의해 틀어진 각도가 나를 전혀 새로운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가다보면 나의 이야기가 또 누군가에게 새로운 열정을 건네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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