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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온 엄마

노아. 2017. 8. 3. 14:10


돋보기를 가져오지 않으셔서 눈을 잔뜩 찌푸리시면서 그 많은 설문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표정은 밝았다.

죄송해서 어쩔줄을 모르겠다 생각하면서도, 웃으면서 말씀해주시고 전화를 끊지 않으시는 환자분들을 뵈면 힘이 난다. 

유독 더웠던 날이었던지라, 설문이 끝나고 으레 던지는 "오늘 날씨도 너무 더운데 너무 고생하셨어요"라는 멘트를 던졌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시던 어머니는 나를 보고 환히 웃어주셨다. 

"회복의 비결은 어떤 것인 것 같으세요?"라고 묻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너무 예민하게 신경쓰지 않는 거"라고 조금 쑥쓰러운 듯 말하시는 어머님의 말에는, 

병마와 싸워 이겨낸 자부심과 힘이 섞여 있는 듯이 느껴졌다.

"정말 그런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해요 어머님. 표정도 너무 밝으시고 따님도 너무 예쁘세요"라고 말을 했더니,

어머니의 시선은 금새 맞은 편에 앉아있던 딸에게로 향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번졌다. 

참을 수 없는 좋음이 단전부터 쏘아올려져서 얼굴에서 터지는, 불꽃놀이 같은 웃음.

어머니는 눈으로 '그쵸? 그렇죠? 얘가 내 딸이에요'라고 말하고 계신듯 했다. 

아마도 그 어머니는 집에 가면서 딸에게 "그 선생님이 너보고 너무 예쁘다고 그랬어"라면서 자랑스럽게 말하시겠지.

딸은 "뭐야 그거 그냥 하는 말이겠지"하면서 내심 손사래를 치면서도 활짝 웃고 있을 것이다.


그 웃음은 나에게 참 익숙한 웃음이었다.

울엄마가 삶의 가장 지치는 순간에도 나를 보면 내게 지어주던 표정이었으니까.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문득, 

엄마가 만일에 위암에 걸렸다면 나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자마자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 유리로 만들어져 있는 것인지,

형성될 때에만 굉장한 열과 존재감을 느끼게 해서,

일단 형성되고 난 사랑은 과연 이것이 사랑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나보다.

하지만 깨어질 때는 너무 큰 소리가 나기 때문에, 깨질 위험에 처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아 이것이 사랑이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나보다.

모르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는 벌써 30년 가까이를 나에게 푹 빠져있다.

그런 엄마를 내가 어떻게 속상하게 하겠어, 라고 생각하며 나는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엄마를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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