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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리를 한 번 하고 싶어 써보는 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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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리를 한 번 하고 싶어 써보는 글.

노아. 2017. 2. 14. 00:35

0.

이것은 나흘 간의 파편과 조각들을 모아온 글이며,

마지막으로 조곤조곤 떠들어대는 나의 수다이자,

많은 이에게 소중했었던 누군가의 마지막에 대한 기록.

그리고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했던 가족들에게 조금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1.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로부터 부재중이 한 통 와있었고,

엄마에게서 카톡이 몇 개 와있었다.

멍한 정신에 카톡을 봤지만 현실감은 없었다.

여전히 멍한 정신에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네네, 내일 가는 표요. 네. 일본으로 가는 거요. 네 취소해주세요. 아 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네네."

한 달을 기다렸던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어서 짜증이 났다.

그리고 짜증이 난 내 자신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2.

얼마전에 본 영화 <데몰리션>에서 주인공 데이비드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는다.

하지만 그는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다. 그저 주어진 일들을 할 뿐.

아내가 죽은 날, 병원의 고장난 자판기는 그의 돈을 먹어버렸고,

그는 자판기 회사로 항의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항의로 시작된 그의 편지는 점차 아내에 대한 마음과 기억과 그의 모든 이야기들로 채워져간다. 

고장난 자판기처럼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던 그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이 아내를 무척 사랑했음을. 

그리고 그녀의 부재로 인해 자신이 많이 슬픔을 깨닫는다. 


3.

운전을 하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계속 들었다.

무언가 한 박자씩 질질 끄는듯한, 늘어지는 기타 소리와 함께 악셀을 밟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갑자기 눈물이 나다가, 노래 후렴구를 따라 부르다가, 실없는 생각에 웃기도 하다가.


"너-와 함께 걷고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싶어."


4.

예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나는 차에 타고 있었다. 

모의고사를 본 날이었는데, 선생님의 부름을 받은 나는 중간에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컬투쇼가 나오고 있었다. 

뭔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너무 웃겨서 나는 막 깔깔대고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울다가 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컬투쇼를 들으며 웃는 나 자신에 대한 기억만 생생하고, 그 뒤 삼일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이 장면도, 그 장면도, 현실성이 없을 뿐이었다.


5.

의사의 연락을 받은 아들은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마 아들은 위독하신 아버지가 제발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주시기를,

비행기 안에서 간절하게 몇 번이고 기도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숨을 겨우 붙들고 있었다.

"아빠, 지금 큰아들 오고 있으니까, 그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새벽 세시에 이 곳에 온 누나는, 연약한 숨을 쉬고 있는 아버지의 귀에 계속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꼴딱 밤을 샌 큰아들은 아침 7시가 넘어서야 겨우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달음에 침대로 달려온 큰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손을 붙잡은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렀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

숨소리는 미약했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편안했다. 

"고생하셨어요 아버지. 이제 가셔도 돼요. 이제 평안히 쉬셔도 돼요"

엄마의 말에 따르면, 큰외삼촌이 저 말을 하는 동시에 할아버지의 숨이 서서히 떠나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밤새 큰아들을 기다려주시고는,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참으로 평안하게 떠나셨다고 한다. 

외삼촌이 도착한 후 5분 뒤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6.

병원에서 빌려입은 검정색 상복에는 아니 세상에..!

비밀 주머니가 있었다.

핸드폰도 넣고, 립밤도 넣을 수 있다니.

촘촘해서 따듯하기까지 하다. 

거기다 저고리 리본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 찍찍이로 붙이기만 하면 됨! 

'세상 이렇게 편리한 한복을 만들어 놓다니..'

나는 감탄하면서 펄럭거리는 치마를 부여잡고 2호실로 돌아갔다. 


7. 

우리는 모두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너무나 준비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10년 이상 치매를 앓아오셨고,

나를 알아보셨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긴긴 시간 동안 혼자 힘으로는 일어날 수조차 없는 한 살 아이같은 모습으로 지내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맞닥뜨린 죽음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찢어놓았다. 

죽음과 예술의 닮은 점은 하루 앞 걱정에 눈이 가리워진채 한 치 앞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를 그 매일의 삶에서 세발자국쯤 떨어뜨려 놓는다는 것이다. 

그 강제로 만들어진 틈새 속에서 우리는 다시 삶과, 죽음과, 개인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8.

할아버지는 학자셨다. 

유학이 흔치 않던 시절 독일로 건너가 독일문학을 배워오셨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읽고, 번역하고, 쓰고, 가르치시는데 쓰셨다. 

장례식장 앞에 걸려있는 많은 학교들의 이름과 학회들의 이름만큼이나 할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하셨다.

(비록 할아버지의 파우스트 번역본은 우겸이가 읽다 포기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치매에 걸리기 직전까지 할아버지는 책을 쓰셨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생전 좋아하셨다던 괴테의 어록. 

할아버지는 많이 노력하고, 많이 방황하신 삶을 사셨다. 


9. 

촘촘하게 많은 할 일들에 떠밀려 다니고 있는 와중에도

그 틈새마다, 

사이마다,

찰나마다,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멍하니 있다보면 나의 생각은 어느새 필사적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지난 10년 동안 치매를 앓아오신 할아버지를 일상에서 잊고 살았음에 대한 미안함.

또는 어쩌면 치매 걸리기 이전의, 첫째 손녀에게 참 관심 많았던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

혹은 어쩌면 그 고된 삶의 여정의 마지막을 보며 내가 애써서 만들어내는 의미. 


10.

할아버지의 방은 늘 어지러웠다.

책들과 이불과 어지러이 늘어져 있는 잡동사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방에 가는 것이 좋았다.

할아버지는 그 혼돈 속 어딘가에서 늘 과자를 찾아주셨기 때문이다.

이불 밑에서, 쌓여진 책 밑에서, 책상의 구석에서 나오는 웨하스.

과자가 나타나는 과정은 거의 연금술에 가까웠다. 

할아버지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과자였다. 

나는 배불리 과자를, 아니 사랑을, 아니 과자를 먹으며 자랐다. 

'초콜릿은 사랑'이라는 내 주장에 변명거리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주전부리 사랑도 유전임. 


11.

난생 처음 들어간 입관실은 공기가 서늘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익숙했던 할아버지가 조금 차가워보이는 얼굴로 누워계셨다. 

코는 막혀있고 입술엔 뭔가 연지를 찍어바르신듯한. 

이상하고 낯설어서 겁이 덜컥 났고, 그래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내 시야에 할아버지의 평안히 감겨진 눈이 들어왔다. 

아 - 그 표정이...

너무 편안해보여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할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명 차가웠는데, 고인의 몸이었는데, 내 손은 떨리고 있었는데도,

그 순간 이상하게 할아버지가 참 사랑스러웠다. 

그 때부터는 참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12.

위로 받으면 너무 현실로 다가올까

아무에게도 위로받고 싶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 

부고를 알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입관을 하고 와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이렇게 소중했던 존재인 우리 할아버지를 위해서 누군가 기도해줬으면.

이제 이 세상에서 떠나가시는 우리 할아버지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그 존재를,

그 발자취를,

그 애썼던 삶을,

떠올려주기를 바라면서.

부고를 알렸다.


13.

나는 할아버지가 편안히 가셨음을 안다.

그리고 그 영혼이 고단했던 몸에서 벗어나 자유해졌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났던 것은,

"내가" 할아버지를 오랜 시간 동안 보지 못할 것이라는 

지극히, 아주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그게 참 말도 안되게 마음이 아프더라고.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을 믿기에. 

나는 오늘을 웃으며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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