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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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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구.

노아. 2016. 6. 27. 20:11


아빠는 요즘 알 수 없는 피부병과의 지리한 싸움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의사들은 아마도 이것이 알러지와 아토피의 혼합 형태쯤 되는 것일 거라고, 

면역 반응이 이상한 것일 거라고 이런 저런 소리를 하는 모양인데

어쨋든 치료가 그렇게 순조롭지 않은 걸 보면, 알면서 하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의 팔에는 치열한 전투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아니 사실, 팔 뿐만 아니다.

팔, 손, 손가락에 이어 등 전체, 목의 약간, 다리 곳곳에 아빠가 긁어서 생긴 무수한 동그란 상처들이 나있다.

살색 돌하르방의 느낌이랄까. 

전염성이 전혀 없는 주제에 전염병에 걸린 마냥 참 여기저기 상처가 많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빠의 팔을 보고 움찔 놀라며 두 발자욱쯤 거리를 벌렸을 것이다. 


그것은 매우 간지럽다고 한다.

간질간질, 간질간질.

그렇게 약을 올리는 피부병에 아빠는 불꽃같은 긁긁을 시전한다.

북북북북북.

그렇게 긁혀 무수한 상처가 생기고, 그 딱지 위에 또 상처가 생기고, 또 생기고.

아주 오래된 흉터와 새로 생긴 상처가 어우러져 있다. 


아빠는 한동안 병원에서 처방받은 스테로이드 연고인지 호르몬 연고인지를 발랐는데,

그 약을 바른 부분에 아니 글쎄, 커다랗고 굵은 털들이 쑥쑥 자라났다.

탈모인들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했을만한 털들이지만, 

그 털들은 안타깝게도 정수리가 아닌 팔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아빠는 요즘 진지하게 제모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빠는 저녁 설거지를 한다.

그게 아빠의 당번이라서. 

이제는 실력이 많이 붙어서 웬만한 설거지양에는 눈하나 깜짝 안한다.

낮은 싱크대 때문에 엉거주춤하게 서있지만, 

허투루 쓰는 동작 없이 착착 깨끗한 그릇들을 쌓아올린다.


아빠는 낡은 옷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하면, 일부러 새 옷을 낡은 옷처럼 만들기 위해 팬티 고무줄이란 고무줄은 다 끊어놓는 정도.

양말도 몇 번이나 기워 신고, 엉덩이에 구멍난 바지를 보며 '내 방귀의 힘이 이 정도'라며 흐뭇해하는 정도. (그건 좀 신빙성이 있지만)

그런 아빠가 설거지를 하며 입고 계신 옷은 다름아닌 난닝구.

아저씨의 전유물인 하얀 난닝구는 낡아서, 여기저기 무수히 구멍이 뚤려있다.


구멍에 하나하나 굳이 손가락을 찔러넣으면서,

나는 아빠에게 "아빠, 난닝구 내가 하나 사줄까?" 하고 물으니

아빠가 "됐어." 하신다.

"그래도 이렇게 구멍이 많잖아" 했더니,

"뭐 여기저기 구멍이 많이 나기는 했는데, 전반적으로 볼 때 괜찮지 않아? 아직 난닝구로써의 역할은 다 하는 쓸만한 난닝구라고" 


난닝구에 뚫려진 여기저기 구멍 사이로

아빠 몸에 뚤린 구멍 여기저기가 보인다.

그 순간 나는 왠지 말문이 막혀서 먹먹해져 버렸다.


낡은 난닝구를 아빠가 걸치고 있는 것인지, 낡은 난닝구의 구멍이 난닝구 위에 있는지 아빠 위에 있는 건지. 

'전반적으로 볼 때 괜찮은 난닝구라고' 

아빠는 혹시 모든 늙어가는 것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시는 찢어진 난닝구를 버리겠다는 말은 말아야지, 

하고 생각을 했다.


구멍이 좀 나있으면 어떤가. 

걸칠 수 있기만 하면, 그것은 충분하고도 충분한 난닝구다. 

그것은 제 역할을 착실히 하는, 훌륭한 난닝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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