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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을 하루 앞 둔 날의 단상 본문
어제는 새벽 네 시까지 일을 했다.
갑자기 주어진 일이었다. 여태까지 일을 하면서 딱히 힘들었던 적이 없었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일했다. 밥값을 하는 건 좋으니까.
아침 먹고 엑셀, 점심먹고 엑셀, 저녁먹고 엑셀.
새벽까지 쉬지않고 이어진 강행군이었고, 중간 중간 체력이 너무 달려 누워서 작업을 했을 정도였지만, 그게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쓸모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개강을 하루 앞 둔 시점에 마치 중간고사 끝난 사람같은 몸상태가 되었지만, 그게 그렇게 원망스럽거나 답답하거나 하진 않다.
학부 때 개강 전날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참 얼마나 감사한지.
그 때에는 잔뜩 긴장해서 자는 것도, 숨쉬는 것도 힘들었었는데, 지금은 개강을 생각해도 딱히 그렇게 어마하게 힘들지는 않다.
확실히 지금의 삶이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건, 내가 경험했던 그리고 지나쳐온 많은 순간들을 내가 온전히 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하면서도,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부시절이 특히나 그랬다.
새로운 많은 자극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참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나는 그 순간들을 그저 지나쳐왔다. 마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순간이 생생하게 경험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 안에 완전하게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이 '쌓여'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쌓아나간 것만이 내가 완전하게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술을 잔뜩 마시고 정신없이 웃거나, 일에 잔뜩 취해 정신없이 일만 하거나, 혹은 사람들을 만나서 속이 빈 말들과 농담들을 주고 받거나 하는 일 모두의 공통점은 그 순간에 '내'가 온전히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들을 그냥 지나쳐갈 뿐이지, 살아내고 있지 않다.
버티어 온 나날들이,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랬던 하루들을 뒤돌아보면, 그 속에는 마치 내가 없었던 것만 같다.
조금 더 풍성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두려움에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만함을 웃음 속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진솔함으로 포장한 가시돋친 마음조차 내가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한 순간 한 순간을 내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