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

09. 본문

카테고리 없음

09.

노아. 2014. 2. 12. 02:47

나는 어렸을 적부터 무언가 읽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는 책이 항상 부족함이 없었고, 내가 책을 좋아하고 읽는 모습을 부모님도 좋아하셨기에 책을 사는데에 돈을 아껴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어느날 나의 이 평온한 '읽음'의 세상에 센세이션이 일어났으니 - 그것은 바로 친구가 어디선가 빌려왔던 만화책이었다. 주로 세계명작을 즐겨읽던 초등학생은 만화를 한 번 맛보고 신세계를 본 기분이었다.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동작들, 그리고 생생한 대사들! 정말 만화는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놀라울 정도로 빨리 읽혀졌다. (그 당시에 만화책 한 권을 10분이면 봤다. 만화책을 친구들과 돌려보던 그 시절엔 내 스피드를 무기로 항상 내가 먼저 시작하겠노라고 우겨댔었다. 다른 느린 아이가 읽으면 빨리 읽는 나는 복창이 터지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즐겁게 만화책을 보는 모습을 본 할머니와 아버지는 이런 건 어디서 났냐며 이런 건 읽을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대체 이 재밌는 걸 왜 학교 선생님은 압수하고 부모님은 싫어하는지 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런 무언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는 느낌조차 만화를 읽는 재미에 일조한 것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압제와 압박(?) 속에서 결국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집 앞 공원에서 만화를 읽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동네 어디에나 흔하게 있었던 만화대여점에 가서 만화를 고르고, 코묻은 천원을 내면 세 권을 빌리고도 백원쯤 남았다.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 얻어서 신나는 마음으로 공터에 가서 비닐을 깔고앉아서, 한참 만화를 봤다. 엉덩이가 저려질 무렵이 되면 보다 만 만화책을 검은 비닐봉지에 곱게 싸서 땅을 파서 묻어둔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일제시대의 비밀결사 독립투사마냥 만화를 보아왔고, 여전히 만화를 사랑한다.

지금이야 (아니 사실은 그 때에도) 왜 부모님이 만화 보는 걸 싫어하시는지 이해한다. 글 중 비슷한 장르인 소설이나 수필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깊이나, 대중성과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억지로 들어가있는 선정성과 폭력성은 확실히 교육적이진 않지. 그렇지만 분명 그 만화들 중에서도 명작이 있는거고 나름의 교훈과 세계관이 녹아있었다.

이런 만화의 세계에도 또다른 센세이션이 불었는데, 그것은 바로 웹툰의 등장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강풀의 작품이나 성게군의 만화를 제일 처음 접한 것으로 기억한다. 웹툰은 그저 흑백이었던 내 만화 세상에 올칼라를 입히고, 뭔가 좀 어설프지만 훨씬 자유롭고 덜 퇴폐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던 기억이다.
예전의 만화책이 비뚤어진 학생들이나 몰래 보던 오타쿠의 점유물같은 느낌이라면, 웹툰은 훨씬 더 오픈된 공간에서 누구나 심심할 때면 한 번쯤은, 혹은 진지하게 빠져서 보게 되는 우리 문화의 일부로 그리고 예술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출판 만화 시절에는 사실 일본 만화가 절대적이었다. 아직도 사실은 그렇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요소가 항상 빠지지 않고 가미되어 있는 일본 만화는 중독성이 높지만, 그만큼 독자층은 매니아 층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주로 서비스되고 있는 웹툰은, 우리나라 독자적 노선을 통해 변모하고 진화해왔다. 그림보다도 탄탄한 스토리 텔링을 가장 큰 무기로 삼은 웹툰은,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는 만큼 다양한 주제와 깊이, 그리고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줬다.

여전히 웹툰을 볼 때면 어른들의 눈총을 받고, 나 자신도 떳떳하게 취미는 웹툰보기! 라고 선뜻 말하기 전에 한 번 망설이게 되지만, 나는 우리나라 웹툰이 자랑스럽다. 그 다양성과 높은 퀄리티와 전문성이 웬만한 소설 못지않은 작품도 많다.

그래서 내가 의미있게 보았기에 기억하고 싶는 웹툰을 적고자 한다. 그 짧은 만화가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TistoryM에서 작성됨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