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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과 심리치료 주요문구 스크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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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애착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 :
우리는 애착관계 속에서 ‘자기’를 발달시켜 나간다.
성숙한 자기란 분화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와 통합(모순된 것들의 공존)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표상적 자기) ~ 마음챙김 자기, 정신화 자기.
애착관계는 어려운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우는 배움터.
결국 관계 안에서 자기를 발달시켜 나가는 것이고, 발달한 자기로 더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애착이론의 정수?
p.105
즉 경험에 대한 우리의 표상들이 자각을 통해 밝혀질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의 진위여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정신적인 표상이라는 것은 현실과 다를 수 있다.
이런 비성찰적인 마음 상태에서 우리는 주관적인 경험에 단순히 매몰되거나 빠져 버린다. …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경험이 본질적으로 표상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가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의 포로로 남게 된다.
= 어떤 면에서는 분화 (나와 타인의 경계, 내부 세계와 외부 현실의 경계를 갖는 것)가 안 된 상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통합 (나나 다른 대상에 대하여 모순되는 두 가지 성질이 공존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 미워하는 타인을 동시에 사랑함)이 안 된 상태로도 볼 수 있겠다. 쪼개어진 경험들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면에서. 내가 느끼는 모순은 나의 표상에서 오는 모순이기에. 밖에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대상은 그러한 여러 성질들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p. 86
상호주관성:
Stern에 따르면, 약 9-12개월쯤 유아는 자신에게 마음이 있고, 엄마에게도 마음이 있으며, 그 마음의 내용물, 즉 내면의 주관적 경험이 공유될 수 있다는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된다. 모호한 상황에 처한 아기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이 어때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엄마의 얼굴을 본다. 이런 유형의 ‘사회적 참조’는 아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정하는 공동 주의의 형태를 수반한다.
상호주관적 경험의 본질과 그 후에 발생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경험을 규정하는 것은 의도와 느낌 및 주의의 초점을 공유하는 행위이다. 상호주관적인 관계는 주관적인 경험이 형성되는 중요한 맥락이다.
Stern “두 마음이 상호주관성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상호주관성도 그 두 마음을 형성한다.”
=> 결국 상호주관성이라는 것은 두 개의 마음, 예를 들면 엄마와 아이의 마음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나, 어떤 의도나 느낌 주의의 초점을 공유함으로써, 두 사람이 각자의 주관적인 행동에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됨을 말하는 것 같다.
주관성을 가지는 독립된 두 사람이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만들어내는 공유된 시선.
p.87
상호주관성 없이도 애착관계를 형성 가능 (자폐증)
애착관계 없이도 상호주관적인 관계 가질 수 있음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인데 소울메이트처럼 느껴짐)
일반적으로 애착과 상호주관성은 서로를 증진한다 (심리치료)
=> 즉: 애착관계는 사랑하는 것. 상호주관성은 견해를 공유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려나?
애착체계는 안정감을 주고 (안전기지 역할 ~ 탐험하려고 할 때 돌아갈 집이 있는 정도)
상호주관적 체계는 이해하고 이해받고 심리적 친밀감과 소속감을 준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며 나의 견해는 틀린 것이 아니다. 이 사람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상호주관적 경험은 타인을 기본적으로 우리의 정신적 행위 영역 밖에 존재하는 분리된 주체로 인식하는 데 달려 있다. 타인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표상적 세계에서 어쩌면 이상화되거나 혹은 평가절하되는 대상이고 실제 사람으로 경험되지는 않는 대상이다.
::: 타인 역시 주관을 가진 하나의 독립된 개체이다, 라는 것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서로의 주관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
후기 발달의 경로는 근본적으로 아동이 어려운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처음을 배우는 방식에 따라 형성된다. 애착 관계는 이런 감정 학습이 최초로 이루어지는 배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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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0
반응을 예측할 수 없는 애착 대상들과의 초기 경험이 이 환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타인의 관심과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느끼는 괴로움을 타인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해결책의 문제점은 그들이 자신의 괴로움을 증폭시킬 수 있는 내적, 외적 단서를 계속해서 찾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p.335
이런 과정에서 나는 의도하지 않게 자신의 감정을 다룰 수 없다는 그녀의 무력감을 -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녀의 유기 불안을 - 확인해 준 꼴이 되었다.
=>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만듦으로써 이 사람들은 무엇을 얻는가? 상대방을 구원자로 만든다. 이는 상대방에게 ‘이 사람에겐 내가 꼭 필요해. 버려서는 안돼’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만든다.
p. 337
그녀는 자신의 취약성을 내세웠고 나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초반에 두드러지게 그리고 도움이 안 되는 방식으로 그녀를 과잉보호했던 것이다. 이 환자에게는 기대를 적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많이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 워룡이에 대해 내가 최선을 다해 보호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온 몸을 던져오는’ 종류의 사람들을 받아주기 위해 얼마나 내가 노력했었는가? 그러나 그들은 내가 없어도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약하지 않다. 내가 다 받아주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마치 그들이 무너질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
p.347
나는 짜증이 나는 것을 느꼈는데, 그가 우리의 작업을 비난하기 시작했을 때는 상당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그의 내면에 있는 화난 가해자 역할을 하게끔 유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가 친밀감을 느끼는 대신 싸움을 걸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나의 의구심을 소리 내어 말했다. 그는 화를 냈지만 이 해석은 나중에 유용했다.